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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번 크게 짜증을 냈습니다. 별로 중요한 일을 하던 중도 아닌데, 급작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상대방에게 화가 치솟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와, 먼 곳까지 쭉 뻗어 있는 길을 걷다보니 슬슬 나의 짜증에 대한 후회가 올라옵니다. 보통은 웬만해서는 후회를 하지 않지만, 한 번 떠오른 후회라는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에겐 순간의 작은 짜증이었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 혹은 꽤나 오랫동안 남을 안좋은 기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과학적인 호기심으로, 왜 짜증이 났을까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봅니다. 내가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방해받거나 혹은 내가 함께 하려던 것에 상대방이 반응하지 않을 때, 짜증이 났다는 단순한 가정에서 생각을 시작해봅니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내가 방해받거나 상대방이 나를 따르지 않을 때마다 짜증을 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아주 좁은 시공간에서 바라보면 아주 작은 행동에서 짜증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하나씩 들여보다 보면 짜증이라는 것이 그런 순간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깨닫습니다.
우리 은하에는, 두 별이 중력으로 묶여 있는 쌍성(binary star)이 의외로 많습니다. 약 85%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쌍성의 대부분은 두 별이 서로 다른 진화의 과정을 겪습니다. 질량이 큰 별은 빨리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질량이 작은 별은 조금 더 수명이 깁니다. 태양 정도 질량을 가지는 별이라면 둘 중에 하나가 먼저 핵융합 반응이라는 중요한 일을 멈추고, 백색왜성(white dwarf)라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백색왜성은 질량이 조금만 늘어나면 중력적으로 불안정해져서 폭발하고 우리는 이걸 신성(nova)라고 부릅니다. 정말 심각해지면, 초신성(supernova) 폭발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가만히 있는 백색왜성의 질량이 그냥 갑자기 늘어날 일은 없습니다. 옆에 있는 나보다 늦게 나이를 먹고 있는 다른 별이 그 크기가 엄청 커지는 거성(giant) 단계에 들어서면, 옆으로 자신의 물질을 살짝 흘려 내보내기도 합니다. 이 물질이 이미 죽어버린, 더 이상 반응할 것이 없었던 백색왜성에 쌓이면 펑하고 터지는 것입니다. 자잘하게 자주 펑펑 터지는 별들도 있고, 크게 아주 한 번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별들도 있습니다.
평소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 깊숙히 쌓아두고 있다보면, 폭발의 위험이 점점 커집니다. 처음에는 별 것이 아니었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내 주변에 쌓입니다. 어제는 좀 힘든 하루를 보냈으니, 오늘은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해봅니다. 그러다가 방해를 받으면 화를 좀 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한 달 동안 너무 힘들었네, 이제 좀 쉬어볼까라고 생각하는 날도 있을 겁니다. 특별히 뭘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 머릿속에 뭐 심각한 것들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옆에서 나를 방해하는 것에 갑자기 화가 치솟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돌아올 길은 없습니다.
평소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충실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커피 한 잔의 여유 혹은 미뤄둔 드라마 보기, 아니면 읽던 책을 마저 들여다보기 등등.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뭔지 머리가 자꾸 까먹는다는 겁니다. 내 마음은 알고 있는데, 내 머리는 왜 그것을 들여다보고 행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화를 내야할 대상은, 지금 나를 방해하는 상대방이 아니라 주변에서 호시탐탐 나의 욕망을 미뤄두게 만드는 사소한 것들입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당장 하지 못하게 잊게 만드는 주변 것들. 그 중에는 스마트폰도 있겠지요.
세상에는 홀로 남은 백색왜성처럼, 툴툴거리지만 모든 것에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마치 우리 은하 속의 쌍성처럼, 내 마음 속에 자꾸 무언가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쌓이는 질량을 두고만 볼 것이 아니라, 자잘하게 퐁퐁 주변으로 뿜어내줘야 합니다. 저도 당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조금씩 꺼내놔야겠습니다.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면 안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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