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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낭만과 과학

Psychedelic COSMOS 2024. 10. 14. 17:06

요즘 TV에서 자연과 가깝게 다가가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는 전 세계의 자연을 보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인기 요소였으며, 「삼시세끼」 는 어찌나 인기가 많았으면 Light를 달고 다시 편성되어 방영되겠는가. 자연과 가까워지는 캠핑이라는 행위도 급작스럽게 대중화되면서, 낭만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활동이 되었다. 연제저수지를 돌아 출근하면서, 나 조차도 가끔 자연이 만들어놓은 경치에 감탄하곤 한다. 자연과 낭만. 누가 감히 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 

우리 회사도 자연 속에 있다. 연제저수지

리처드 도킨스는 「무지개를 풀며(Unweaving the Rainbow)」(1998)에서 과학이 낭만을 차가운 현실로 끌어내려 우리의 감수성을 헤치고 있다는 터무니 없는 말에 대해 항변한다. 자연의 부드러움에 반해 과학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편견일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처럼 과학을 따라다니는 이 오명을 벗게 하는 것도 재미 있는 이야깃거리이긴 하다. 그러나 이미 리처드 도킨스가 아주 잘,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냈으므로 여기선 다른 것에 집중해보겠다. 

 

무지개를 풀며, 리처드 도킨스

과연 자연은 낭만으로 가득 차 있는가? 

 

이야기를 MSG(Monosodium L-glutamate, L글루탐산나트륨)에서 시작해보자. 나는 요리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MSG와 같은 맛을 내는 다른 식재료가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MSG 대신에 멸치와 같은 다른 자연의 식재료를 사용하여 맛을 내는 것을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는 것은 안다. 자연의 재료를 이용한 조미료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MSG, 이것처럼 자연과 과학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것은 찾기 힘들다. 자연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라고 하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잘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MSG는 사탕수수로 만든다. 더군다나 세균을 이용한 발효법으로 만든다. 어디에 화학적인 것이 들어가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MSG와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 애꿎은 멸치를 다량 사용하는 것이 자연에 더 도움이 될까? 혹은 더 자연적인 것일까? 

 

자연적인 혹은 자연스러운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묘한 느낌은, 사람들이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혹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다. 그리고 모든 생명이 지구를 자신의 방법으로 변화시키며 생활한다. 따라서 인간의 손때가 묻은 것과 묻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인간이 수 천 년 동안 가축으로 키우며 손때를 묻혀 온 소와 닭을 과연, 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구분 짓는 행위는 최소한 지구 위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큰 낭만을 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예술'이다. 

 

그러면 이제 자연스러운 것을 이야기해보자. 자연스러움과 낭만이 만나는 가장 멋진 곳은 바로 '자만추'이다.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연애에 성공하는 것, 이것보다 더 낭만스러운 것이 있을까. 두 사람이 만나 한 쌍을 이루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진화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행위다. 그러나 우리가 통상 이야기하는 '자연' 속,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의 짝짓기는 그렇지 않다. 앤디 돕슨의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Flaws of Nature)」(2023)를 보면, 특히 동물들의 짝짓기는 지저분하고 냉혹하다. '자만추'의 낭만은 자연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 앤디 돕슨

 

당연하게도 자연의 섭리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진화'다. 우리는 낭만과 맞닿아 있는 자연을 이야기하니 '생명의 진화'라는 단어로 다소 축소하여 표현해도 무리가 없겠다. 그러나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 속에는, 진화에 담긴 자연의 섭리가 잘못 해석되어 나타난 최악의 사건이 있다. 바로 우생학(eugenics)이다. 진화 그리고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오해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여기다. 자연스러운 것이 모든 것에 앞서 거의 '신'의 영역에 달하는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은, 진화가 이루어 낸 엄청난 결과물, 생명을 보면서 많은 과학자들을 현혹시켰다. 그러나 개개의 생명을 조금 더 자세히 뜯어보면, 오히려 모두 불완전한 것들이다. 자연은 완벽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만도 않다. 과학이 자연의 낭만을 헤친 것이 아니라, 낭만은 거친 자연 속에서 인간 문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 문화 속에는 당연히 과학도 포함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1980)가 잘 설명하고 있듯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은 똑같이 별에서 왔다. 자연에서 우리가 낭만을 느낄 때, 그 근원은 자연이 만들어진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산과 바다, 그리고 기기묘묘한 생명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과정, 그리고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거대한 조화의 그물. 낭만은 표면적인 거대함과 아름다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그 거대함과 아름다움을 빚어낸 과정과 시간을 관조할 수 있을 때, 더 큰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을 때, 낭만은 더 큰 감동을 우리에게 준다. 그런 의미에서 '자만추'는 너와 내가 만나기까지의 우연과 선택들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낭만이 된다. 그렇다면, 우주의 거대한 조화와 그 속에서 내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바라볼 수 있는, 천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우주에서 가장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코스모스, 칼 세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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